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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칼럼
좀비 인문학의 시대
박승주 바른마음의인운동 상임대표(세종로국정포럼 이  |  sjparkciv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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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2  09:5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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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상 준  POSTECH교수

‘인구론’이라는 말이 있다. ‘인문계 졸업생 구십 퍼센트가 논다’는 말이란다. 여러 줄임말들 중에서 이 말만큼은 잘 잊히지 않을 듯싶다. 유수의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뽑을 때 인문계 출신은 원서도 내지 못하게 했다는 소식도 기억에 남아 있다. 몇몇 대학들이 인문계열 학과를 강제로 통폐합하면서 잡음이 잇달아 사회를 시끄럽게 하기도 했는데, 요즈음은 이공계로 전과하려는 인문계 학생들이 늘고 있으며 이에 부응해서 이공계 복수전공을 확대한다는 등의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보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인문학이 ‘죽은 개’ 취급을 받는다고 할 만하다.

인문학이 죽었다는 진단은 오래 된 것이다. 2000년대 10년 내내 ‘이공계 위기’ 담론이 커지는 동안, 인문학은 위기 경보조차 받아보지 못한 채 시나브로 죽어 없어지고 말았다. 인문학의 사멸을 잘 알려 주는 최근의 사례로 나는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계 졸업생의 취업 위기’라는 어느 칼럼의 주장을 들고 싶다. 이러한 생각은 내게, 필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도, 인문학의 폐기 선고로 다가온다.

인문학의 위기를 인문계 졸업생의 실업 문제로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그들의 취업률이 올라가면 인문학의 위기가 완화되거나 해결된다고 생각할 터이다. 과연 그럴까. 전혀 그렇지 않다. 

취업률을 올리면 위기가 해소된다는 것 자체가 경제적인 맥락에서의 사고이다. 따라서 인문학이 경제가 아닌 이상에야, 서로 다른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이 두 가지 사회 부문을 한 쪽에 불과한 경제를 기준으로 하여 직접적으로 연결 짓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형식논리적으로도 자명한 이러한 사실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인간 사회의 모든 활동을 경제를 준거로 해서만 판단할 때뿐이다. 예컨대 부의 증대만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적 동물만이 활동하는 순수(?) 경제 사회를 가정할 때만 해 볼 수 있는 말이라 하겠다.

고려해야 할 또 한 가지는, 원리를 따질 때 인문학은 이윤의 창출을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오늘날의 경제 원리와 상충된다는 사실이다.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가 제시하는 ‘포트래치(potlatch)’에 따른 ‘선물의 사회경제학’이 보여주는 것처럼 예술과 축제란 역사적으로나 원리적으로 현재 존재하는 부를 소비해 왔듯이, 문학, 역사, 철학으로 대표되는 인문학 또한 기업 중심의 경제적인 부의 창출과는 무관하다. 동서양 중세의 유교 문화나 가톨릭의 경제관을 떠올리기만 해도 이 엄연한 사실이 명확해진다.

요컨대 예술과 마찬가지로 인문학 또한, 경제적인 부로만은 채울 수 없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현재의 부를 소비하며 영위되는, ‘경제로 환원될 수 없는 인간적인 활동’인 것이다.

따라서 인문학의 위기란, 경제의 원리, 물질의 논리, 그리고 그 위에서 위력을 행사하는 승자 독식 상태의 천민 자본주의적인 정글의 법칙이 횡행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인문정신이 도외시되는 사태를 말한다. 달리 보자면, 그러한 과정에 맞서서 그것을 완화시켜야 할 인문학이 극도로 위축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경제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 상황에 인문학이 저항하지 못하는 상황, 인간의 삶을 인간의 삶답게 발전시키는 데 인문학이 긍정적으로 기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바로 인문학의 위기이다.

이러한 사태의 원인으로 인문학이 자신의 소임을 다해 오지 못했음을 질타할 수는 있어도, 이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인문학에 경제 활동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미 식물 상태에 빠져 버린 인문학을 완전히 죽여 없애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위기를 인문계 졸업생의 취업 위기로 보는 것은, 이러한 잘못된 요구의 최신 버전에 불과하다. 뜬금없는 주장이 아니라, 인문학의 죽음 상태를 호도해 온 하나의 경향에 이어져 있다는 말이다.

10여 년 전에 대기업을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인문학 강연들, 그에 호응하여 개설된 유수 대학 및 기관 들의 인문학 프로그램들, 그리고 이들이 대중적으로도 퍼져 이제 하나의 흐름을 이루게 된 ‘거리의 인문학’의 유행(?)이 그것이다.

피상적으로 보면 인문학이 ‘부흥’한다고 오해할 수 있을 법한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실로 문제적이다. 이렇게 유행하는 인문학(?)이란, 기업(논리)에 의해 호출되고 상품 논리를 따르면서, 경제의 원리를 반성적으로 성찰할 인문정신을 탈각한 채 유통되는 문화상품의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문학이 아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거리의 인문학’의 유행 현상은, 경제적인 이익 추구의 일환으로 호출된 죽어 버린 인문학이 횡행하는 ‘인문학의 좀비 현상’에 불과하다 하겠다.

인문학의 위기를 인문학도의 취업률 증대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인문학의 좀비화 과정이 거의 완료되었음을 알려 주는 징후이다. 인문학이 경계하는 경제의 논리로 인문학의 진정한 위기를 호도하면서, 의도와는 상관없이, 인문정신의 작은 뿌리까지 없애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인문학도를 취업시켜 경제인을 만들거나 인문학자를 인문학 판매상으로 만드는 일이야말로 인문정신의 싹까지 죽이고 인문학을 상품화하는 일이다.

인문학이 실로 필요한 것이고 제대로 부흥시켜야 할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구체적인 방법을 말할 계제가 못 되니 목표만 던져둔다. 인문학이 경제적인 효과를 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경제 발전의 성과가 인문학을 활성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 경제적인 대가를 바라지 않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투자로서 인문학을 키워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구론’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이고도 궁극적인 방안이다. 박상준 교수 <주간 안전저널 201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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